[기자수첩] 육식의 종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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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레프킨이 쓴 육식의 종말을 한번으로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 같아 몇가지 강조되는 주제들을 짚어본다.

소에 대한 숭배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서구문명은 수소, 그리고 암소와 함께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소는 남성다움, 열정, 공격적, 수태능력의 화신, 타협하지 않는 과감함 등이다.
암소는 부드럽고 우아한 피조물 중의 하나이며 인내의 화신이다.

오늘날 소의 조상으로 알려진 야생동물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의 덩치 큰 오록스(멸종된 유럽산 들소)이고
다른 하나는 덩치가 작은 고원의 숏혼이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와 유럽 및 중동전역에 흩어져 있는 암각화에는 초원을 맹렬히 내달리거나 활과 창에 찔려 부상당하고 쓰러진 거대한 오록스들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소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길들여 졌는데 처음에는 종교적 의식의 희생물로 이용되었다. 달의 여신인 암소신을 섬기는  사회에서는 초승달을 닮은 소뿔이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유대 기독교의 예배의식조차 위대한 소 숭배의식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문화사가들은 이런 사실을 오랫동안 방관했다.

기원전에는 소 숭배의식이 현재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이 포함된 북지중해 지역에서 널리 행해졌다. 히타이트에서는 난폭한 황소가 비, 천둥, 번개를 지배하는 최고 신이었다. 해상활동을 업으로 삼았던 페니키아인들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르는 식민지 곳곳에 소숭배의식을 전파시켰다.

소는 페니키아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가령 그들의 알파벳 첫 글자인 ‘A’는 황소의 머리모양에서 빌려 온 것이었다. 심지어 초기 헤브라이인들도 종종 ‘야곱의 황소’라 일컬으며 황소를 숭배했다. 콘라드는 구약성서에서 초기에는 ‘황소(bull)’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가 나중에는 ‘전능한 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훗날 많은 역사적 참고자료들을 보면 모세는 헤브라이 황소신의 화신으로 그려지고 있다.

콘라드는 헤브라이의 종교적 관습과 가나안인들의 소 숭배의식의 결합을 지적한다. 지중해 크레타 섬에서 발생한 고대 미노스 문명(BC 2600~1400)에서는 태양과 동일한 존재로 황소신을 숭배했다. 신성한 황소는 그리스 사회에서도 두드러지게 묘사되었다. 생명과 다산의 신 디오니소스(Dionysus)는 ‘뿔 달린 황소’ 또는 ‘암소의 아들’로 묘사되었다.  이탈리아인들은 소의 땅을 뜻하는 ‘이탈리아(Italia)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가져왔다.

기원전 1세기 중엽 황소숭배의식은 로마에 전파되었다. 2세기 말 미트라교는 로마의 공식종교로 선포되었으며 당시만하더라도 초기 기독교 의례보다 훨씬 더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미트라종교는 기독교와 많은 특성들을 공유하면서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 기독교 성직자들은 대중의 인기를 얻기위해 미트라 제례의 많은 부분들을 수용해야했다.

콘라드는 기독교가 미트라의식에서 죄를 씻는 피의 목욕을 빌렸으며 홍소의 피를 죽어가는 예수의 피로 대신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는 미트라교가 정한 신성한 날인 12월 25일도 빌려왔다. 애초에 태양신의 탄생을 축하하던 그날을 예수탄생일로 정해진 것이다. 기독교 신봉자들은 미트라 황소신을 어둠의 상징으로 새롭게 변형시켜 미트라교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래서 미트라 황소신은 악마의 화신이 되었다.

447년 톨레도공의회(The Council of Toledo)에서 교회는 최초로 악마에 대한 공식적인 묘사를 발표했다. 당시 한 수도원장의 말이다.

“머리의 뿔, 갈라진 발굽 혹은 갈라진 한의 발굽, 당나귀 귀, 무성한 털, 발톱, 이글거리는 눈, 무시무시한 이, 거대한 음경, 고약한 유황냄새가 특징인 크고 검은 험악한 형체가 악마이다.”

 

Ston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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