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김일성의 공통점은 권력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점일 것이다.
기자에게 박정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다.
당시 남북한이 통일을 위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란 3대원칙에 합의한다.
남한의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석달도 못돼 서로는 갈라서고 비방하면서 금방 통일될 것 같았던 분위기는 ‘때려잡자 공산당’으로 변한다.
그리고 남한은 72년 12월 27일에 북한은 하루 지난 12월 28일에 1인 영도자에게 모든 권력을 넘겨주는 헌법과 선언문이 발표된다. 박정희와 김일성은 쌍방 묵인하에 서로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는 작업을 동시에 스테레오로 진행해 왔던 것이다.
그 작업은 넓고 광범위해서 아직까지도 어르신들 중에는 박정희의 통치술보다는 ‘반공’ 즉 공산당을 무조건 반대하는데 의미를 두는 분들이 많다. 일제치하와 한국전쟁을 경험했다는 이유가 클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제 남한에서는 ‘박정희’를 정리할 때를 맞았고 북한에서는 곧 ‘김일성’을 정리할 때를 맞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절대 권력자일지라도 사실에 입각해서 모든 일이 모든 사람에게 판단되어지는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아버지 박정희때문에 대통령까지 했던 박근혜씨가 박정희 100주년 기념사업을 못하게 됐으니…
탄핵만 되지 않았어도 박정희 100주년 생일인 11월 14일까지 대통령직에 있을 뻔 했는데…
박근혜씨가 헌재의 판결에 승복을 못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어쩌면 아버지는 지하에서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딸내미 때문에 살아 생전 자신의 ‘진실’이 더 확실히 밝혀지게 됐으니까 말이다.
Stone Choi.